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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계엄 선포의 사법심사 가능성
  • 황남기 기자
  • 등록 2024-12-22 19:37:31
  • 수정 2024-12-23 07:4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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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계엄선포의 사법심사여부

 

최근 계엄 선포가 통치행위에 해당하여 사법심사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원래 통치행위는 영국 국왕의 대권에서 유래된 개념이다. 영국 국왕의 대권(Royal Prerogative)은 영국 헌법에서 군주에게 부여된 고유한 권한으로, 역사적으로 절대군주제에서 유래한 권한이다. "The King can do no wrong."라는 표현은 영국 법에서 유래된 법언으로, 군주의 행위가 법적으로 면책됨을 의미하며, 입헌군주제 아래에서는 국왕의 권한이 내각과 정부에 위임되어 군주가 직접 책임을 지지 않는 관습과 연결된다.

 

절대군주는 법의 지배에 대한 예외였으나 시민혁명을 거치면서 법의 지배를 받는 존재로 자리 매김함으로써 통치행위 또한 법의 예외에서 법의 영역으로 들어오게 된다. 

 

비상계엄이 사법심사의 대상이 되는 통치행위라면 굳이 헌법에서 비상계엄의 요건을 규정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계엄 선포가 통치행위에 해당하여 사법심사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시대착오적 발언은 대법원 1981. 4. 28. 선고 81도874를 근거로 한다.

 

 

대법원 1981. 4. 28. 선고 81도874 판결

계엄선포의 요건의 구비여부나 선포의 당,부당을 법원이 심사할 수 있는지 여부 (소극) 계엄선포가 당연무효가 아닌 한, 사법기관인 법원이 계엄선포의 요건구비나 선포의 당, 부당을 심사하는 것은 사법권의 내재적인 본질적 한계를 넘어서는 것이 되어 적절하지 못하다.

 

 

그러나 이 시대에서 전두환은12. 12 쿠데타를 일으키고 광주학살을 딛고 권력을 찬탈한 자이었다. 그러니 대법원입장에서 1981년에 전두환은 사실상 절대군주였던 것이다. 그래서 계엄선포의 요건의 구비여부나 선포의 위법여부가 아니라 당,부당을 심사할 수 없다고 한 것이다. 법원의 사법권은 법률적 쟁송을 심사할 권한이므로 위법여부를 심사할 권한만 있을 뿐 당,부당은 어차피 법원이 심사할 영역이 아니다. 이 판례문을 작성한 대법관은 계엄선포 요건의 위법여부를 심사할 수 없다고 한다면 사법권을 포기하는 꼴이 되니 차마 계엄선포 요건의 위법여부를 심사할 수 없다고 하지 아니하고 계엄선포의 요건의 구비여부나 선포의 당,부당을 심사할 수 없다고 한 것이다. 마치 마음에 숨겨 둔 표현은 드러내지 않고 비밀스럽게 자신의 본심을 판례문에 소심하게 심어 둔 것이다.

 

그리고 1995. 2. 25. 김영삼 대통령이 취임하고 더 이상 군사정권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던 대법원은 1997. 4. 17. 선고 96도3376 전원합의체에서 본심을 드러내어 비상계엄의 선포나 확대가 국헌문란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행하여진 경우에는 법원은 그 자체가 범죄행위에 해당하는지의 여부에 관하여 심사할 수 있다고 한 것이다.

 

 

 대법원 1997. 4. 17. 선고 96도3376 전원합의체

대통령의 비상계엄의 선포나 확대 행위는 고도의 정치적·군사적 성격을 지니고 있는 행위라 할 것이므로, 그것이 누구에게도 일견하여 헌법이나 법률에 위반되는 것으로서 명백하게 인정될 수 있는 등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라면 몰라도, 그러하지 아니한 이상 그 계엄선포의 요건 구비 여부나 선포의 당·부당을 판단할 권한이 사법부에는 없다고 할 것이나, 비상계엄의 선포나 확대가 국헌문란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행하여진 경우에는 법원은 그 자체가 범죄행위에 해당하는지의 여부에 관하여 심사할 수 있다.

 

 

 

Ⅱ. 고도의 정치행위에 대한 사법심사가능성 

 

 1. 대법원 판례

 

유신헌법의 긴급조치에 대해서는 수 없이 많은 판례를 통해 대법원은 사법심사의 대상으로 삼을 수 없다고 하였으나  2010. 12. 16. 선고 2010도5986 전원합의체에서 고도의 정치행위라도 사법심사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하여 판례를 변경한 바 있다. 

 

 

 

 긴급조치에 대한 사법심사의 가부(대법원 2010. 12. 16. 선고 2010도5986 전원합의체)

 

 입헌적 법치주의국가의 기본원칙은 어떠한 국가행위나 국가작용도 헌법과 법률에 근거하여 그 테두리 안에서 합헌적·합법적으로 행하여질 것을 요구하고, 이러한 합헌성과 합법성의 판단은 본질적으로 사법의 권능에 속하는 것이다. 다만 고도의 정치성을 띤 국가행위에 대하여는 이른바 통치행위라 하여 법원 스스로 사법심사권의 행사를 억제하여 그 심사대상에서 제외하는 영역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이 통치행위의 개념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과도한 사법심사의 자제가 기본권을 보장하고 법치주의 이념을 구현하여야 할 법원의 책무를 태만히 하거나 포기하는 것이 되지 않도록 그 인정을 지극히 신중하게 하여야 한다.

이러한 법리를 바탕으로 하여 볼 때, 평상시의 헌법질서에 따른 권력행사방법으로는 대처할 수 없는 중대한 위기상황이 발생한 경우 이를 수습함으로써 국가의 존립을 보장하기 위하여 행사되는 국가긴급권에 관한 대통령의 결단은 가급적 존중되어야 한다. 그러나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은 법치주의의 원칙상 통치행위라 하더라도 헌법과 법률에 근거하여야 하고 그에 위배되어서는 아니된다. 더욱이 유신헌법 제53조에 근거한 긴급조치 제1호는 국민의 기본권에 대한 제한과 관련된 조치로서 형벌법규와 국가형벌권의 행사에 관한 규정을 포함하고 있다. 그러므로 기본권 보장의 최후 보루인 법원으로서는 마땅히 긴급조치 제1호에 규정된 형벌법규에 대하여 사법심사권을 행사함으로써, 대통령의 긴급조치권 행사로 인하여 국민의 기본권이 침해되고 나아가 우리나라 헌법의 근본이념인 자유민주적 기본질서가 부정되는 사태가 발생하지 않도록 그 책무를 다하여야 할 것이다.

 

그런데 유신헌법 제53조 제4항이 “ 제1항과 제2항의 긴급조치는 사법적 심사의 대상이 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어, 대법원은 유신헌법 아래서, 긴급조치는 유신헌법에 근거한 것으로서 사법적 심사의 대상이 되지 아니하므로 그 위헌 여부를 다툴 수 없다는 취지의 판시를 한 바 있다( 대법원 1977. 3. 22. 선고 74도3510 전원합의체 판결, 대법원 1977. 5. 13.자 77모19 전원합의체 결정 등 참조).

 

그러나 재심소송에서 적용될 절차에 관한 법령은 재심판결 당시의 법령이므로, 사법적 심사의 대상이 되는지 여부는 현재 시행 중인 대한민국헌법(이하 ‘현행 헌법’이라 한다)에 기하여 판단하여야 한다. 현행 헌법 제76조는 대통령의 긴급명령·긴급재정경제명령 등 국가긴급권의 행사에 대하여 사법심사배제 규정을 두고 있지 아니하다. 더욱이 유신헌법 자체에 의하더라도 그 제8조가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이를 위하여 국가는 국민의 기본적 인권을 최대한으로 보장할 의무를 진다.”고 규정하고 제9조 내지 제32조에서 개별 기본권 보장 규정을 두고 있었으므로, 유신헌법 제53조 제4항이 사법심사를 배제할 것을 규정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이는 사법심사권을 절차적으로 제한하는 것일 뿐 이러한 기본권 보장 규정과 충돌되는 긴급조치의 합헌성 내지 정당성까지 담보한다고 할 수 없다. 따라서 이 사건 재심절차를 진행함에 있어, 모든 국민은 유신헌법에 따른 절차적 제한을 받음이 없이 법이 정한 절차에 의해서 긴급조치의 위헌성 유무를 따지는 것이 가능하므로, 이와 달리 유신헌법 제53조 제4항에 근거하여 이루어진 긴급조치에 대한 사법심사가 불가능하다는 취지의 위 대법원 판결 등은 더 이상 유지될 수 없다.

 

 

최근에 대법원은 과거 군사정권의 폭압에 침묵하고 인권침해의 소리에 귀를 닫았던 과오를 뉘우치고 긴급조치로 유죄판결을 받은 사건에 대해 형사재심에서 무죄 판결을 해왔다. 그리고 드디어 계속 부정해왔던 국가배상마저 인정하는 판례를 연이어 내놓고 있다. 

 

대법원 2022. 8. 30. 선고 2018다212610 전원합의체

국가안전과 공공질서의 수호를 위한 대통령긴급조치(1975. 5. 13. 대통령긴급조치 제9호, 이하 ‘긴급조치 제9호’라고 한다)는 위헌·무효임이 명백하고 긴급조치 제9호 발령으로 인한 국민의 기본권 침해는 그에 따른 강제수사와 공소제기, 유죄판결의 선고를 통하여 현실화되었다. 이러한 경우 긴급조치 제9호의 발령부터 적용·집행에 이르는 일련의 국가작용은, 전체적으로 보아 공무원이 직무를 집행하면서 객관적 주의의무를 소홀히 하여 그 직무행위가 객관적 정당성을 상실한 것으로서 위법하다고 평가되고, 긴급조치 제9호의 적용·집행으로 강제수사를 받거나 유죄판결을 선고받고 복역함으로써 개별 국민이 입은 손해에 대해서는 국가배상책임이 인정될 수 있다.

 

 

 

2. 헌법재판소

 

 

 

헌법재판소는 일찍이 1996. 2. 29. 선고 93헌마186에서 통치행위일지라도 국민의 기본권 침해와 직접 관련되는 경우에는 당연히 헌법재판소의 심판대상이 될 수 있다고 선언해왔다. 

 

헌법재판소 1996. 2. 29. 선고 93헌마186

 

이른바 통치행위를 포함하여 모든 국가작용은 국민의 기본권적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수단이라는 한계를 반드시 지켜야 하는 것이고, 헌법재판소는 헌법의 수호와 국민의 기본권 보장을 사명으로 하는 국가기관이므로 비록 고도의 정치적 결단에 의하여 행해지는 국가작용이라고 할지라도 그것이 국민의 기본권 침해와 직접 관련되는 경우에는 당연히 헌법재판소의 심판대상이 될 수 있는 것일 뿐만 아니라, 긴급재정경제명령은 법률의 효력을 갖는 것이므로 마땅히 헌법에 기속되어야 할 것이다.

 

헌법재판소 2013. 3. 21. 선고 2010헌바70 사건 이래 다수의 판례에서 긴급조치에 대한 사법심사를 인정하고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한다고 하여 위헌결정을 해 왔다. 

 

유신헌법 제53조 제4항은 ‘긴급조치는 사법적 심사의 대상이 되지 아니한다.’라고 규정하고 있었다. 그러나 비록 고도의 정치적 결단에 의하여 행해지는 국가긴급권의 행사라고 할지라도 그것이 국민의 기본권침해와 직접 관련되는 경우에는 헌법재판소의 심판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점(헌재 1996. 2. 29. 93헌마186), 이러한 사법심사 배제조항은 근대입헌주의에 대한 중대한 예외가 될 뿐 아니라 기본권보장 규정이나 위헌법률심판제도에 관한 규정 등 다른 헌법 조항들과 정면으로 모순·충돌되는 점, 현행헌법에서는 그 반성적 견지에서 긴급재정경제명령·긴급명령에 관한 규정(제76조)에서 사법심사 배제 규정을 삭제하여 제소금지조항을 승계하지 아니한 점 및 긴급조치의 위헌 여부는 원칙적으로 현행헌법을 기준으로 판단하여야 하는 점에 비추어 보면, 이 사건에서 유신헌법 제53조 제4항 규정의 적용은 배제되고, 모든 국민은 현행헌법에 따라 이 사건 긴급조치들의 위헌성을 다툴 수 있다고 보아야 한다

 

Ⅲ. 결론

진보와 보수를 떠나서 정확한 팩트를 확인하고 발언을 했으면 좋겠다. 시국이 엄중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을 위시하여 국민의 힘 의원들이 통치행위이므로 사법심사가 되지 않는다는 발언을 보면서 같은 공동체에서 살면서 정신은 여전히 절대주의 시대에 두고 있는 자들이 너무 많구나하는 자괴감이 들 정도이다. 대화의 시작은 상식과 사실인정에서 시작된다. 이를 부정하고 있으니 무슨 대화가 가능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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